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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집 주택살이/보통집짓기 (과정)

집짓기의 행적 ; 건축가/스튜디오 미팅 (1) (제안서 다음)

by 귀밤토리 2020.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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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필터링을 열심히 한 25장의 제안서를 첨부해서 이메일을 돌리자, 답장과 연락은 빨리 왔다. 제일 먼저 연락 온 스튜디오를 기준으로 되는 날짜대로 미팅 순서를 잡았다. 대부분의 미팅 장소는 건축사의 스튜디오들이었다. 열 군데 정도의 연락을 받고 시간이 되는대로 스케줄을 잡았다. 물론 우리도 움직여야 하는 인원이 4명이었기 때문에 모두 시간이 되는 날을 맞추기 제일 어려웠고,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형부와 내 스케줄을 비교적 맞추기가 편했었다는 점... 아무튼 제일 먼저 잡았던 미팅은 서울에 있는 건축사였고 제일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었다. 그리고 차례차례 다른 건축 스튜디오들도 미팅을 했었다. 

 

미팅 때마다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모든 곳의 미팅을 가기 전엔 두근거리고 설렜었다. 우리의 제안서가 그래도 건축 스튜디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니까... (물론, 우리의 일이 돈이 되는 건축사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제안서를 보고도 끌리지 않아서, 혹은 스케줄을 맞출 수가 없어서 답장이 안 온 곳도 있으니까 꽤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스튜디오를 가본다는 경험이 나에겐 늘 행복한 경험이었다. 분야는 달랐지만, 다를수록 더 신기하고 재밌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공간을 어떻게 꾸렸는지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다 알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떤 사람이 더 이해하기 쉽게 느껴진다. 

 

지을 집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 얘기하고, 집을 지을 건축주가 될 우리에 대해서 말하는 자리였지만 분명히 우리도 건축사들에 대해서 들으러 가는 자리였기 때문에 모든 미팅은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다. 서로가 서로를 팔아야 하는(?) 자리였다고나 할까... 

 

제일 먼저 받았던 답장

아직도 첫 스튜디오와 첫 미팅을 했던 날을 기억한다. 그땐 2018 여름.. 제일 처음 연락 왔던 곳과 어쩌다 보니(?) 첫 미팅을 했던 스튜디오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값비싼 동네에 위치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널찍한 오피스 건물 안에 있지도 않았다. 허름해 보이는 철물점이 1층에 자리한 건물에 있었다. 건물 뒤에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면 있던 스튜디오... (스튜디오의 이름은 말은 안 하겠지만, 내가 이리도 자세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있다.) 미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대학원 다니던 친구들이랑 같은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본인들이 쓸 수 있는 스튜디오 자리들이 있었는데 그곳을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었다. 물론 그것보단 훨씬 프로페셔널 한 느낌이었지만... 뭔가 잡다한 게 많이 있었다...(참고로 난 잡다한 것들을 사랑한다.) 아니 근데, 내가 생각했었던 건축 스튜디오, 혹은 내가 미국에서 실제로 갔었던 건축 사무소들의 느낌은 분명히 아니었다. 스튜디오라기 보단 과학자의 작업실 같은 느낌이었다. 

 

길게 뻗은 테이블 위로는 장난감부터, 건물 모형, 쌓여있는 책들, 독특한 문구류들... 맞게는 온 것 같은데 뭔가 다른 이 느낌... 그런 테이블 뒤로는 아이디어 보드&프로젝트 관련된 것들이 쓰여있기도 하고, 붙어있기도 하고 걸려있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로 있었다. 레고들도 보였었다. 첫 미팅인데 이거 뭐지 하면서 시작했지만, 미팅은 정말 재밌었다. 파티셰인 언니는 잘 봐주십사 하고 건네는 케이크와 빵들을 가지고 갔고, 형부와 난 각각 랩탑도 챙겨갔었다. 

 

우리의 상황과 어떤 사람인지도 얘기했지만 대부분은 건축가님이 어떤 프로젝트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의 진행될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들었다. 듣고 나니, 우리가 생각했던 규모보다는 큰 사이즈들의 프로젝트를 많이 맡아오신 듯했다. 

 

과거의 프로젝트를 얘기하시던 중 아직도 기억 남는 게 있는데 (이미 2년 전 얘기) 어떤 건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었는지였다. 일상에서 엄청 별거 아닌 어떤 상황을 보시고, 만든 건물을 보여주셨었는데 속으로는 "와.. 이 사람 변태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창조적인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변태 같다는 말은 칭찬이다. 아니, 솔직히 돌+아이 같았다. 좋은 의미로 미친 돌+아이...(아흑ㅜㅜ소장님 죄송... 합니다ㅋㅋ근데 정말 좋은 의미였습니다.) 근데 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서로에게 궁금했던 점도 묻고 솔직하게 우리의 상황도 얘기했다. 여러 건축사들을 미팅해볼 거라고... 제일 먼저 잡힌 미팅이라고... 기분 나쁘게 들리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집을 짓고 싶은 미래 건축주로서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점을 알고 계셔야, 우리에게도 조금 더 좋은 제안을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치열한 경쟁사회 ㅜㅜ) 우리도 소비자였기 때문에 비교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다 쿠팡이나 네이버 쇼핑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검색하고 비교하는 것과 같이... 

첫 스튜디오와 첫 미팅을 끝내고 올렸던 인스타그램 포스트 였던 것 같다. (참고로 빅풋과는 연관 전혀 없음;) 

우리는 꽤 긴 미팅을 마치고, 우리 넷은 또 따로 카페에 들러 어땠는지 서로의 의견에 대해서 길게 얘기했었다. 얘기하다 보니 이렇게 느낌을 얘기하고 나중에 결정하기에는 분명히 다 잊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신부들이 드레스 고를 때 처음 비슷하지만 다른 드레스들을 보면서 뭐가 뭐였는지 헷갈리듯이... 그래서 필요하다고 느낀 게 뭔가 적어놓을 만한 노트였다. 모두가 나중에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만의 스코어 보드를 만들었다. 이 기준들은 다분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뿐... 절대적인 점수를 매긴게 아니다. 본인이 중요시 여기는 기준들을 넣어 스코어 보드를 만들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기준들은 B-H 창의성, 주거 경험(상업시설 아닌), 커뮤니케이션, 재밌게 일 할 수 있을까?, 우리에 대한 열정, 포폴, 더 알고 싶은 사람인가?

아니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건축가들을 이렇게 판단하냐고? 아무래도 우리와 많은 얘기를 나눌 사람이 될 테니까.. 게다가 내 상업 건물이 아닌 내가 실제로 살 건물을 그려줄 사람이니까... 이렇게 다방면에서 평가하고 싶었다. 각각의 기준들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창의성 : 찍어내는 집을 짓고 싶지 않았다. 그럴 거면 아파트에서 살아도 충분했으니까... 

-주거 경험 : 주거건물을 건축한 경험이 많은지에 대해서도 점수를 더 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상업적인 건물보다는 또 다르게 신경 쓸 것들을 우리보다는 더 알고 있어야 하니까... 

-커뮤니케이션 : 건축가들과 미팅을 한 번만 하고, 어떻게 이 사람과 말이 통할 줄 아냐고? 아니, 첫 미팅을 잡기 위한 대화에서부터 이 사람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한번 얘기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보통의 미팅들은 어떻게 갖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첫 미팅 치고 다양한 얘기들을 나눴다. 

-재밌게 일 할 수 있을까? : 집을 지어본 사람들 말로는 한번 하면 10년을 늙는 기분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기왕 늙을 거 재밌게 늙으면 더 좋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난관이 펼쳐질 줄 알고 재미없는 건축가와 일 하고 싶은가? 디자인식 유머와, 사람으로서의 위트가 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위트가 엄청나다고 해서만 좋다기보다는 나와 그 포인트가 맞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 대한 열정 : 개인적으로 이 포인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리랜 싱을 하다 보면 나도 사람이다 보니 열정이 없는 프로젝트들이 있다. 그런 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근데 처음부터 의욕 넘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나도 좀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근데 그 반대는 어떻겠는가, 우리에 대한 열정이 없어 보이면 건축주로서의 의욕을 보여주기도 민망하다.

-포폴 :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좋았는지다. 그건 이 전에 리스트업에서 하지 않았냐고? 분명히 다르다. 웹사이트에서 멋진 사진들이 즐비한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다 멋져 보였기 때문에 미팅을 잡은 거였다. 하지만, 건축가님들이 말씀해주시는 본인의 포트폴리오 설명을 들어보면 별생각 없는 프로젝트도 다르게 보인다. 나름의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포폴에 없지만,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나 지어는 졌지만 업데이트가 안됐던 부분들도 미팅 때 들을 수 있었다. 웹사이트로 혼자 봤을 때랑 다르게 느껴졌다. 

-더 알고 싶은 사람인가? : 아까 말했다시피, 난 똘끼를 좋아한다. 그냥 똘끼 말고 창의적인 똘끼... 그런 사람들과는 언제든 같이 일해보고 싶었다. 창의적인 똘끼가 있는 사람은 더 알고 싶어 진다.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게 왜 기준에 들어갔냐면, 정말 멋진 프로젝트만 하는 사람이어도 내가 더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의 인연은 끝이 아닐까... 싶었다. 

 

Photo by  Lex Photography  from  Pexels

 

물론 각자의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적었었다. 아니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돈은 왜 안 적었냐고?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우리의 프로젝트라면 네고의 요소가 조금 있다고 생각했다. (언니네와 우리 집이 비슷한 구조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 생각을 안 하고 싶었다. 사실 어찌 보면 제일로 중요한 요소겠지만 돈부터 생각하고 무조건 싼 곳을 덜컥 계약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꿈을 크게 갖고 내 마음에 드는 곳이랑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고 봐도 좋다. 추가의 비용이 더 드는 곳이더라도 일단은 마음에 드는 곳을 걸러내기 위한 기준들이었기 때문에... 

 

저 스코어 보드는 어찌어찌 10팀을 채운다. 채워진 점수와 내용, 그리고 미팅썰들은 다음 포스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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