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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집 주택살이/보통집짓기 (과정)

집짓기의 행적 ; 제안서 꾸리기 전 브레인스토밍

by 귀밤토리 202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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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부분이 제일 행복했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마구마구 적어 내려갈 수 있었다. (나중에 그게 어떻게 될지는 모른 채 행복 회로 돌리기 좋은 상태...) 특히나 나와 남편은 연애 1년 하고 반 정도를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남편은 중식 음식 주점 오너와 개발자, 나는 디자인과 영어 과외를 병행했기 때문에 둘 다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나가서 같이 일하면서 데이트도 할 수 있었다. 당시 남자 친구(現남편)는 잘 다니던 회사를 잠시 떠나 하고 싶어 하던 일을 하던 중이었지만 개발일은 손에 놓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제안서 얘기하면서 왜 갑자기 우리 둘이 하던 일을 얘기하냐고? 우리의 데이트의 구성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데이트의 대부분 랩탑을 들고 다니면서 돌아다녔다. 맛집을 가고 랩탑을 들고 카페를 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맛집을 가고 랩탑을 들고 카페를 가는 건 같았지만, 각자의 해야 하는 일을 하기만 했던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생겼던  것이다. 그것은 제안서 꾸리기.

 

당시 언니네는 이미 결혼을 하고 분당에서 살던 상황이었고 우리는 각각의 본가인 수원과 분당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게 따로 살고 있었던 우리는 둘이 같이 사는 모습을 생각하고 궁리해봤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 식을 잡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우리는 집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에 이게 이상한지는 잘 못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된 제안서 꾸미기는 좋은 데이트 코스였다. 맛집-> 까페가 대부분이었던 코스에서 더 생긴 것이다. 집 관련한 것들 구경하고 얘기하기. 길게 만났다고는 생각 안 하는 상황이었지만 당시도 서로의 취향을 잘 알았다. 둘 다 깔끔하고 단순한 걸 좋아했다.(기본 베이스는 심플 그 자체를 좋아했지만 가끔 이상한 소품들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했다.) 그리고 취향은 점점 만나다 보니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다 보니 니 취향 내 취향 따질게 없어졌다고나 할까... 

 

큰 과정은 이랬었다. 첫번째로 사이트를 같이 가봤었다. 한번 간 게 아니라 정말 자주자주 갔었다. 분당에서 여주까지 가는 것도 또한 데이트였다. 둘 다 사람 많은 것보다는 조용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에겐 여주의 인상이 꽤나 좋았다. 어디에서 우리가 뭘 할지를 알아야 대충 어떤 걸 꿈꿔야 하는지 감이 왔으니깐... 특히 제주를 좋아했던 남편에게는 이렇게 자연 친화적인 곳들이 많으니 우리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가 집을 지을 곳을 보러 가던 중 만났던 여주의 유채꽃밭 ; 이런 장소들이 우리의 맘에 쏙 들었다. 

 

그리고는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모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 사용하는 핀터레스트. 이미지들을 스크랩하기 좋은 웹사이트다. (디자이너들은 모를 수가 없는 핀터레스트)  

 

Pinterest

요리법, 집 꾸미기 아이디어, 영감을 주는 스타일 등 시도해 볼 만한 아이디어를 찾아서 저장하세요.

www.pinterest.co.kr

건축법이나 자세한 것들은 모르는 문외한 2명이서 할 수 있는 게 뭐겠냐 싶어서 열심히 이미지를 모았던 것 같다. 남편보단 역시 내가 열심히 줍줍 했었다. 그냥 맘에 드는 것들을 모았었다. 규모, 돈, 현실 가능성 따위는 모두 무시하고... 그래야 좀 더 재밌는 게 모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모은 보드는 이랬다. 

 

10. dream - house

tooearlystudio님의 컬렉션 10. dream - house을(를) 둘러보세요.

www.pinterest.co.kr

 

보면 알겠지만, 깔끔하다. 각지고 콘크리트로 된 건물들을 좋아했다. 노출 콘크리트나 하얗게 된 건물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자연과 같이 있는 모습을 많이 생각했다. 아파트에 살지 않고 주택에 산다는 장점 중에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남편도 이런 취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턴가는 내 핀터레스트 보드에만 의존하게 됐다. (남편 본인 귀찮은 점이 가장 컸겠지만) 열심히 모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뭐가 좋고 싫은지... 그런 집에서 뭘 하고 싶은지 행동도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남편이지만(?!) 그땐 남자 친구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게 됐던 것 같다. 

 

보드에 이미지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했던 일들이 또 있다. 가구점, 소품점들을 많이 갔었다. 자동적으로 어떤 취향의 가구가 좋고 소품을 들여 놓고 싶고 얘기하는 것들은 당연했고, 서로의 취향에 얘기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짤 수 있었다. 그리고 가구점을 가보는 걸 정말로 추천한다. 가구들의 정확한 길이를 알 수 있으니까... 나는 길이 개념이 상대적으로 없었다. (디자이너 맞아? 하겠지만 주로 모니터 화면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종이 사이즈들에 관한 길이만 있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 책상엔 자들이 많다. 감이 안 오면 바로 꺼내서 확인해 볼 수 있게...) 그래서 숫자만 들으면 이게 어느 정도 되는지 눈으로 봐야 하는 사람이다. 직접 보고 이런 가구들이 여기엔 들어가야지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 좋았다. 남편은 상대적으로 감을 잘 잡는 스타일이었지만 날 위해서 설명도 해주고 직접 발자국으로 길이 계산도 해주면서 잘 서포트해줬던 것 같다. (남편 고마워...💜) 

크기 감이 안 잡힌다고 하니깐, 발자국으로 거리를 계산해주는 중💜

다음은 하나씩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 궁금한 점들... 얼마만큼 실현될지는 모르지만 행복하지 않은가? 미래의 살고 싶은 집에 대해서 하나씩 그려가 보는 것... (물론, 그게 다 실현되기엔 우리에겐 여유로운 자금 상황은 아니었다ㅜㅜ. 그래도 지금의 만족도는 120%라고 말해주고 싶다.) 

왼쪽 보라색머리 커플은 언니 / 오른쪽 초록색 머리 커플은 우리였다. 내 랩탑으로 감성적인것들을 정리 후, 남편은 조금 더 직관적인 것들을 정리했다. 

이렇게 써내려갔고, 구글 프레젠테이션을 셰어 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가 뭘 썼는지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었다. 읽어보고 이해가 안 가거나 제외되거나 더해져야 하는 것들을 곧바로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마구 때려 넣은 정보들을 정리하는 과정도 당연히 필요했다. 특히나 우리 커플만 짓는 집이 아니었기에 언니네의 정보와도 계속되는 연결성이 필요했다. 연결성이 왜 중요한가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우리는 결국 두 집을 지을 거지만 하나의 프로젝트로 일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두 가지 같은 듯 다른 내용이라고 해서 통일성, 연결성이 없으면 보는 사람들도 헷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들었다. 하나의 프레젠테이션 문서로... (물론, 내 전문인 로고도 만들었다. 어떤 모양일지 모르긴 하지만 간단하고 심플한 집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 번째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봐도 로고 자체도 마음에 든다. (옆에 한글은 로고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단순하지만 집이란걸 표현 하고 싶었다. 지금 와서 보니 만들어진 집과도 비슷한 점들이 있어서 더 마음에 드는 것같다. 그때 당시엔 이렇게 지어질지는 몰랐었지만...보통집인 이유는 다음화에서 공개하겠다.  

 

+ 우리 집을 와본 사람은 이게 무슨 보통 집이냐고 하는데 이유가 있다. 그 이유와 함께 프레젠테이션의 다음 페이지들도 다음 에피소드에 공개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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