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적어 보는 블로그 글이다. 그것도 전시한다는 글이라니, 베트남에서 도자기 촛불 전시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도자기로 촛불을 만들 때만 해도, 베트남에 와서도 계속 도자기 작업을 계속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해외에 살게 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건 작업 환경이다. 한국에서 부터 익숙하게 사용하던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검색 몇 번이면 해결되던 일들이 여기서는 여러 사람에게 묻고, 직접 찾아가 보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겨우 결과물로 이어진다. 그래서 처음 호치민에 왔을 때는 생각했다. '촛불은 잠시 쉬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인 선생님이 계신 도자기 공방을 찾게 됐다. (사실 한국인 선생님이 아니었어도 됐겠지만, 작업을 계속 해오고 싶었던 터라 여태까지 해오던 걸 연결해서 하고 싶다고 편하게 얘기하고 싶어서 한국선생님을 찾게 됐다.) 내가 가는 하루 공방(공방의 후기가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예전 글 참고하시길 2025.04.21 - [보통집 주택살이/보통집의 호치민 살이] - 📍호치민 빈탄 | 하루 공방 Haru Craft 에서 도자기 수업 듣기)이다. 아이가 국제학교에 적응을 한 기미가 보이자 마자, 등록했었다.
그렇게 등록한 공방에서 만져보는 한국에서 만지던 흙과는 또 다른 흙이었다. 이때부터 사실 좀 난감했다. 한국에서는 정말 하얗고 뽀얀 백토로 작업을 해왔는데 베트남에서는 누우런 흙밖에 없었다. 만들어 봤는데 한국에서 만들던 촛불과는 또 달랐다. 느낌도 전혀 달랐다. 그래도 여러가지를 시도해보면서 하나둘 만들기 시작한 촛불들이 어느새 쌓였고, 지난 1년 동안 호치민에서 만든 촛불들만으로 전시를 열게 되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Ignite 점화〉. 하루 오브젝트(Haru Object)의 첫 전시이기도 하다. 하루 오브젝트는 내가 다니는 공방의 연결선에 있는 소품샵이다. 선생님께서 새로운 카페이자 소품샵을 하나 더 오픈을 하셨고 거기에 초대 전시로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시작을 알리는 느낌으로 점화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제안을 받자 마자, 내가 감히 전시라는 걸 해도 될까 싶었다. 그리고 또 걱정되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프린트물은 어디서 주문하지부터 시작해서, 기물들은 어떻게 진열하지, 호치민에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데 홍보는 될까까지...)
그래도 사람 일은 안되는 것이 없나보다, 하고자 하니 길을 찾고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의 길을 찾아 전시를 준비했다. 도자기 전시가 메인이었지만, 그림 원화들도 완성을 시켰다.



전시는 정말 물론 나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었다. 하루 공방의 선생님부터, 같이 일하시는 스태프들, 그리고 호치민에서 새로이 알게 된 인연들까지도 모두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특히나 남편과 아들이 없었더라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장 큰 영감인 사람들. 그들의 도움 덕분인지 전시 준비는 오픈날짜를 향해가고 있었다.

나는 촛불이 참 신기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생일을 축하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추억하는 순간에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순간에도 늘 곁에 있다. 같은 불빛을 바라보아도 사람마다 다른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타오르지 않는 도자기 촛불을 만든다. 흙으로 만든 촛불은 불이 붙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온기와 기억, 그리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하던 정신 없는 날 영상도 남겨 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16lDPQZvM0
디스플레이하는 날부터 여러가지가 참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냈다. 디스플레이를 하기 전부터 촛불 하나가 깨졌고, 전시가 시작된 뒤에도 종종 깨진 조각들을 발견했다. 손으로 만든 것들이라 더 조심스럽게 다뤄지길 바랐지만, 전시 공간에 놓인 순간부터는 그것 또한 작품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깨진 촛불들도 그대로 남겨두었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까지 포함해서 지금의 전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빠 껌딱지인 아들도 디스플레이할때 갑자기 엄마를 무조건 따라가야겠다고 떼를 쓰던...묘한 날ㅋㅋㅋ)













지금은 벌써 전시 3주차, 벌써 꽤나 많은 분들의 후기가 들려오고 사진이 올라온다. 정말로 신기한 건, 한국분들도 와주시지만 베트남 포함, 다른 나라 사람들도 오신다는 것. 전시 시작 후 하루 오브젝트에 자주 들러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구경해주시는 모두의 표정이나 반응을 살필 수는 없지만, 내가 타국에서 관람객들의 일부만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전시는 성공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베트남에서 도자 작업을 하면서 내색은 안 하고 싶었지만 현타가 꽤나 왔었다. 근데 기물들을 보는 얼굴들과 나누는 대화들을 엿들으면서 그간의 현타는 씻은듯이 내려갔다.
(전시 리플렛 - 글쓰기가 참 어렵다. 담백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고 싶은데 자꾸 장황해지는 듯하다. )


리플렛의 전시 서문이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면 더보기로 읽어보시길!
〈Ignite 점화〉
저는 촛불에 불이 붙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분명 무생물인 초인데도,
점화되는 순간부터는 마치 숨을 얻은 것처럼 일렁이며 살아 움직이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은 불빛 하나가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가만히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천천히 흔들어 놓는 순간들.
저는 그 장면들을 오래 바라보아 왔습니다.
처음 불을 붙이는 순간처럼,
이 전시 또한 아주 작은 불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게 ‘점화’란 단순히 불을 켜는 일이 아니라,
멈춰 있던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희미해진 내면의 빛을 천천히 키워내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불씨를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 불은 오래도록 잔잔히 타오르고,
어떤 불은 금세 흔들리거나 꺼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당신 안에는
다시 타오를 수 있는 작은 심지가 아직 남아 있을까요.
혹시 이미 검게 타버린 심지라면,
더 이상 빛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라면,
언젠가 다시 점화될 시간이
조용히 찾아오기를 믿고 싶습니다.
작은 촛불 하나가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듯,
하나의 마음 또한 또 다른 마음을 천천히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겐 위로의 불빛으로,
누군가에겐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작은 불씨로 남기를 바라며,
저는 오늘도 조용히 촛불을 빚습니다.
이 작은 불빛들이
당신의 마음속 어딘가에 오래 머물 수 있기를.



전시된 촛불들을 집으로 데려간 분들이 사진을 태그해 주시거나, 직접 보내주시기도 한다. 창가에 놓인 촛불, 책장 한편에 자리 잡은 촛불, 식탁 위에 조용히 놓인 촛불들. 전시장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편안해 보이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 사진들을 보며 생각했다. 결국 내 촛불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같은 공방에 다니시는 분이 사진과 글을 남겨 주셨다. 나를 위해 써주신 글이 위로가 되어 가끔 꺼내어 보고 싶어서 캡쳐해두었다.)

전시장을 떠난 촛불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시장의 촛불의 반짝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간의 디스플레이도 바꾸었다. 혹시 호치민에 있다면, 남아 있는 촛불들과 이미 떠난 촛불들의 빈자리를 함께 구경하러 와주었으면 한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완벽한 촛불들의 전시가 아니라, 떠나고 남겨지고 깨지면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어딘가 해외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같은 모습의 촛불들의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곁에서 오늘도 조용히 촛불을 빚고 있다.
장소는
Haru Object 하루 오브젝트
31 Đường số 54, An Khánh, Hồ Chí Minh 700000
일시는 2026년 7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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